유명인, 브랜드, 국회, 소비자의 요구 커… 화장품 브랜드 속속 동참

화장품 제조와 생산에 따르는 동물의 희생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사진:ENPA)

매년 6월 5일은 UN에서 정한 ‘환경의 날’이다. 1972년 6월 5일에 ‘하나뿐인 지구’를 주제로 한 세계 최초의 환경회의가 열린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113개 나라와 3개 국제기구, 257개 민간단체가 함께 'UN 인간환경선언'을 채택했다. 또 UNEP(국제연합환경계획)과 국제환경기금 설립을 합의해 환경 국제기구가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관련된 행사를 열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품은 환경을 지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6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이 우주에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나타나 그들 존재의 만수무강을 위해 우리 인간을 생체실험과 신약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 인간은 우주적 의학의 발전을 기뻐하며 환호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학문의 본질로 돌아가 아픈 동물들을 돌보는 데 전념하고자 한다.”
 
방영중인 드라마 <출생의 비밀> 등장인물 최국 교수(김갑수 분)의 동물 실험 반대 선언이다.
 
드라마 대사만이 아니다. 2011년부터 유명인과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예인 이효리, 윤승아는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영화감독 임순례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다. 지난 4월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종합토론회’(이하 동물보호법 개정 토론회)에 참석해 동물권에 대해 발언하기도 했다.
 
동물실험은 해부, 시험, 연구, 원료채취 등의 이유로 실시하는 동물 대상 실험이다. 의학, 약품, 식품, 화장품 등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짐작하기 위해 시행한다. 세계적으로 연 1억 마리의 동물이 실험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는 연 160만 마리 이상의 동물을 실험을 위해 사용한다. 농림수산검역본부 통계에 따르면 쥐, 토끼, 개, 고양이, 돼지, 새, 유인원 순으로 동물실험에 쓰인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신체 기관 원리와 성분의 위험성을 알아보기 위해 동물에게 실험해보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현대는 유해성분 사전 검증이 중요해지며 동물실험이 의무화되다시피 했다. 프랑스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동물실험을 통해 독성과 위생을 검증할 수 있다며 표준 연구 방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베르나르의 부인 마리 프란시스 마틴이 남편의 실험을 지켜보다 동물실험 반대론자가 되어 동물생체해부반대협회를 세운 것은 유명한 사례다. 철학자 벤담과 싱어, 레건은 동물의 복지와 권리를 위해 실험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동물의 희생이 필요 이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육되는 실험동물은 스트레스, 공포, 외로움, 자해, 행동장애 등을 보인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관계자는 동물보호법 개정 토론회에서 “동물실험이 끝나 용도 폐기된 쥐는 허리를 부러뜨려 죽인다”고 증언했다. “이후 동물실험윤리위원의 문제 제기로 안락사용 가스 시설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실험 후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윤리 외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 실험 방법과 사용량은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상황과 다르다. 또 사람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3만 가지 중 1.16%에 불과하다. 2만 개 이상 안전성이 검증된 원료를 이미 발견한 것도 이유다.
 
실제로 동물과 사람에게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 경우도 많다. 1957년 개발된 입덧방지제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에선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시판되자 키가 작고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들을 낳는 부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클리오퀴놀, 오프렌, 에랄린도 동물실험에선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사람에게는 부작용을 유발했다. 페니실린처럼 사람에겐 무해하고 동물에겐 치명적인 물질도 있다.
 
카라 관계자는 데일리코스메틱과 인터뷰에서 “여러 분야의 동물실험이 있지만 화장품 동물실험은 의약품이나 식품에 비해 가장 불필요한 실험이기도 해서 중지가 시급하고, 가능하다”고 말했다.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해 법으로 요구된 바는 없다”며 “이는 정부도 동물실험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필수 검증수단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과 마찬가지다”고 풀이했다.
 
소비자의 요구도 크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의 조사에 따르면 65.6%가 동물실험에 반대했다. 국내 동물실험금지 방안 마련에도 70.2%가 찬성했다.
 
화장품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소비자가 많다. (자료:휴메인소사이어티, 카라)
현재는 대체실험법 개발 추세다. 환자 관찰, 사체 연구, 컴퓨터 시뮬레이션, 인공피부 연구 등을 활용한다. 실험동물 절반을 죽일 수 있는 물질 농도를 측정하는 반수치사량 실험, 토끼 눈 점막으로 자극을 진단하는 실험도 동물의 고통에 비해 의학적 성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 하에 폐지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3월 EU(유럽연합)는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수입, 유통, 판매를 모두 금지했다. PETA 등 동물보호단체의 운동과 사회의 요구가 컸다.
 
우리나라도 동참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동물실험 축소와 동물복지 개선 요구가 큰 현실을 반영해 2009년 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를 설립했다. 국제협력파트에 속한 이 센터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동물대체시험법을 도입해 선진국들의 동물실험금지 흐름에 편승할 계획이다. 
 
지난 4월 문정림 의원, 심상정 의원, 진선미 의원, 한명숙 의원 등 4개 의원실과 녹색당, 카라,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은 공동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날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종합토론회’에는 농장동물, 실험동물, 반려동물을 보호하고 학대를 금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표됐다. 특히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조항이 들어 있어 개정되면 국내 브랜드는 이를 지켜야 한다.
 
동물실험 금지에 동참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해외 브랜드는 오래 전부터 동물실험을 반대했다. 더바디샵, 러쉬는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연예인과 함께하는 캠페인, 반대서명운동뿐만 아니라 인공모 브러시, 동물성 원료를 넣지 않은 제품 생산 등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
 
아베다, 콤비타, 버츠비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 꼬달리는 아예 동물에서 유래한 원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시세이도는 지난 3월 모든 동물실험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기업 이미지 개선, 미국과 유럽 시장 겨냥이 이유다. 로레알은 동물 대신 인공피부로 연구하는 대체실험을 개발했다.
 
우리나라도 빠질 수 없다. LG생활건강의 브랜드 ‘비욘드’가 대표적이다. “예뻐지기 위해 널 다치게 할 수 없어”라는 카피를 내세워 소비자에게 동참을 권한다. 또 수익금 일부를 멸종위기종 보호에 쓴다.
 
비욘드는 동물실험반대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진:비욘드)
화장품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5월 자체생산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생산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완전 중지 선언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8년부터 원료와 완제품에 자체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검증 방법을 구축했다.
 
시드물, 자연의벗, 비엔비타 등 11개 브랜드는 동물실험 반대를 지지하며 대표가 직접 서명하기도 했다.
 
중국 진출을 포기한 브랜드도 있다. 아로마티카는 동물실험금지 캠페인에 참여하며 중국 위생검사 과정에 동물실험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수출을 포기했다. 중국은 천연성분까지도 동물실험을 필수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브랜드가 동물실험을 하는지 궁금한 소비자도 많다. 동물자유연대 조사를 보면 95.1%는 화장품 동물실험 여부를 표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97.4%가 여부를 알 수 있다면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선택할 것이라 답했다.
 
정보 제공을 위해 지난해 8월 문정림 의원은 동물실험여부를 화장품 포장지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카라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착한 회사 리스트’를 만들었다. 작년 4월 세계 실험동물의 날을 맞아 공개된 이 명단은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돼 언제든 참고할 수 있다. 중국 수출 여부도 들어 있다. 지난해는 22개였으나 올해는 55개로 2배 이상 늘었다.
 
카라 관계자는 “인터넷에 많은 소비자들이 어떤 브랜드가 (동물실험을) 하는지 궁금해 하며 묻고 정보를 스크랩하는 것을 보고 리스트를 구상했다”고 한다. “브랜드 측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며 문의도 하고 소비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동물실험에 많은 브랜드가 동참하고 있다. (사진:카라 홈페이지)
또 “기업의 영리 목적을 막을 수는 없고 과거에 죽은 동물을 되살릴 수도 없지만 앞으로 동참하는 기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한 개정안은 현재 자문단의 최종의견을 받아 발의 전 검토 단계에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화장품 원료 채취, 원료의 조합, 완제품 제조·생산·판매를 위해 동물실험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다.
 
<글 싣는 순서>
1. 화장품, 환경보호 잘 하고 있나?
2. 화장품 공병 재활용 잘 지켜지고 있나?
3. 화장품 내용물보다 포장이 더 큰 이유?
4. 화장품 매장은 에너지 낭비의 주범?
5. 화장품, 알고 보면 탄소 제조기?
6. 동물을 죽이지 않고 화장품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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