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기름은 더 이상 섞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추민철 박사팀의 기술 개발 이야기

[데일리코스메틱=특별취재팀]

“'물과 기름 같은 관계'라는 관용구를 뒤집은 과학자로 오래 기억됐으면 합니다”

계면활성제 없이도 물과 기름을 섞을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팀의 추민철 박사는 23일 데일리코스메틱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추 박사팀이 개발한 기술은 물과 기름을 섞기 위해 기존의 화장품, 샴푸, 비누, 세제, 식품 등에 꼭 들어갔던 인체에 유해한 계면활성제를 배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이 기술은 화장품,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의약품, 잉크, 페인트 등의 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 가능해 이미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다수의 해외 기업에서도 관심을 표시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일 추박사의 기술개발 사실이 국내에 보도된 후  외국 언론에도  널리 소개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추박사는 “계면활성제 없는 화장품 등 신개념 제품을 개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경제, 산업 발전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며 연구에 착수하게된 동기와 연구수행시의  애로상황, 기대되는 연구성과와 적용분야 등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추민철 박사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이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처음부터 물과 기름을 섞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연구에 임하게 된 것인지?

- 처음부터 물과 기름을 섞고자하여 시작한 연구는 아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측정관련 국가 대표기관이고 그 중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나노물질의 크기/분포(입도)측정 분야다. 최근 나노물질의 유해성이 이슈가 되면서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서 발표한 나노 물질의 새로운 정의 때문에 나노물질의 분포 및 농도의 정확한 측정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게 됐다. 유럽위원회에서 기존에 ‘1-100nm 사이즈를 가진 물질’이라는 정의에 추가적으로 그 사이즈의 물질이 전체 물질의 50% 이상으로 구성됐을 시 나노물질이라고 지칭키로 정한 것이다. 즉, 나노물질을 판별하는데 크기뿐만 아니라 개수농도(물질의 개수)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의미다.

이에 우리팀은 물질의 크기 및 개수농도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나노물질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나노물질은 자기들끼리 잘 엉겨 붙는 성질(응집현상)이 있어 크기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나노물질을 용매(물 등 액체)에 골고루 퍼트리는 것(분산)이 중요한데, 기존의 분산장비로는 나노물질을 완벽하게 분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3년여에 걸쳐 연구에 매진한 결과 ‘집속초음파 분산 장비’를 개발할 수 있었다. 나노물질 크기와 농도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만들어낸 장비인데, 결과적으로 물과 기름을 섞을 수도 있는 장비가 됐다.

▲그렇다면 장비 개발 후 첫 실험은 무엇이었고 물과 기름은 어떻게 섞게 됐나?

- 처음에는 썬크림 재료로 쓰이는 티타니아라는 나노분말을 이용해 성능실험을 했다. 일반적으로 액체에 어떤 물질을 분산/혼합할 때에는 분산 및 분산 후의 분산안정성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분산제 또는 계면활성제를 첨가하게 되는데, 내가 추구했던 목표는 그런 첨가제를 넣지 않고 분산을 시키는 것이었다. 농도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다른 이물질이 첨가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실험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티타니아 실험의 경우 전혀 첨가제를 넣지 않고 실험을 진행했고 기존의 장비와 비교실험 결과 성능이 우수함을 알 수 있었다.

물과 기름을 섞는 실험을 하게 된 동기는 일종의 “도전정신”이 발동해서였다. 궁극의 분산, 즉 혼합기술은 “물과 기름을 섞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실험을 하게 됐다. 또 하나의 동기는 우리 연구팀이 개발한 집속초음파 분산장비가 나노물질 분산에 효과가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방법은 물속에 기름을 안정적으로 혼합하는 것이라고  판단해서였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기쁘다.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추민철 박사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연구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 물과 기름이라는 상극의 물질을 혼합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특히 기름은 물과 섞는 동안에도 떠올라 분리돼 버리기 때문에 극복해야할 복병이 여기 저기 숨어 있었다. 분산실험은 특히 시간이 소요되는 실험이라 밤낮없이 며칠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또한 거의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일이어서 투지와 끈기가 더욱 더 요구됐다. 처음 실험이 성공하고 나서도 수도 없는 반복실험을 하여 검증하는 기간을 6개월 이상 가졌다. 어느 순간이라기보다도 지난 몇 년은 매일이 우리 자신과의 전투였다.

▲앞으로 이 기술이 화장품과 결합된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특별히 적용될 수 있는 화장품의 카테고리가 있을지?

- 처음부터 어떤 응용을 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 중에 화장품, 향수, 탈취제등 많은 일상생활 용품이 물과 기름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기존 제품은 물과 기름을 혼합하기 위해 대부분 인체에 유익하지 않은 합성 계면활성제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기술은 계면활성제 없이 물과 기름의 분산이 가능하므로 화장품으로의 응용을 생각한다면, 분산제(계면활성제) 없는 친환경적이면서 인체 친화적(피부 친화적)인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겨울철 보습에 좋은 천연오일을 일반 토너나 로션에 첨가해서 업그레이드된 성분의 화장품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외에도 색조화장품을 포함해 모든 화장품 개발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중국 4개국에 낸 국제출원 결과가 나오면 세계로 기술이 수출되는 것인지?

- 지금 현재는 미국, 일본, 독일, 중국 4개국에 PCT 국제출원을 한 상태다. 최근에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문의가 있었고 예상외로 외국에서 관심도가 높아 기술 보호 차원에서 특허출원 대상국을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수출보다는 우선 힘든 국내 경제 상황을 고려해 국내에서 사업화 및 실용화를 우선적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이 연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무엇인지?

- “물과 기름 같은 사이”라는 관용구도 있듯 물과 기름은 절대 섞일 수 없는 것인데 이 표현을 뒤집는 기술을 개발하게 된 데 더없이 기쁘다. 농담이지만, 관용구의 의미를 무효화시킨 과학자로 오래 기억됐으면 한다(웃음).

또한 나는 피부가 상당히 예민한 편이어서 화학성분에 오래 노출되거나 화학성분이 많이 들어간 화장품을 사용하게 되면 피부가 붉게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창시절부터 비누와 화장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생활해 왔다. 나와 같이 화학성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를 가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제품개발에 우리의 기술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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