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반드시 개정 관철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촉발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한국환경회의,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최근 '화학물질로부터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선언'을 발표했다.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박수미 사무국장은 "이번 국민선언 지지에 2,025명 및 245개 단체가 참여했다"며 "화학물질의 체계적인 관리와 알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한국환경회의,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최근 '화학물질로부터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선언'을 발표했다. <이미지 제공=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이들 단체들이 국민선언을 통해 요구한 여섯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정보와 용도정보는 사전에 파악돼야 한다.

유럽에서는 모든 화학제품에 대해 정확한 독성분류와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고(CLP Regulation), 제조/수입자와 판매자들은 모두 화학제품의 독성분류와 표시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고 있다. 이 규정은 유통량이 얼마가 되건 상관없이 적용된다. 이 정보는 인터넷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동일한 물질의 독성이 서로 다르게 분류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장치가 화평법에 누락돼 있다. 모든 화학제품의 독성분류와 표시결과를 보고하고 표준화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고쳐야 한다.

둘째, 모든 제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 정보를 소비자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화평법을 도입할 때에 처음부터 고형제품은 제외된 상태의 법률을 만들었다. 모든 제품의 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을 파악할 수 있게 화평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진 제품안전관리를 환경부 등 타 부서로 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을 지원하고 기업을 위해 화평법 무력화에 앞장선 산업통상자원부에게 더 이상 제품안전관리를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촉발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지 합성=뷰티경제>

셋째, 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은 제조·수입·사용을 줄여야 한다.

유럽 REACH는 발암성 생식독성 등 독성 우려가 큰 물질에 대해 '허가대상후보물질목록(Candidate List)'을 작성해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허가물질이나 제한물질만 정하고 '후보물질' 목록 작성공표를 의무화하지 않아 고독성물질의 저감과 대체 유도를 위한 장치가 없다. 유럽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이 의류, 장판, 벽지, 장난감 등 제품 중에 발암물질과 같은 고독성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넷째, 독성물질은 독성의 수준에 따라 관리돼야 한다.

발암물질이나 생식독성물질은 영업비밀이 될 수 없도록 하거나, 소비자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규제 장치들이 자동으로 작동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리대상물질의 목록을 임의로 작성하고 있기 때문에, 독성에 따른 자동관리가 불가능하게 돼 있다. 과거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서는 '유독물'을 정하여 관리하였고, 화평법에서는 '유해화학물질'을 정하여 관리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관리대상물질'을 정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 대상 물질 목록을 작성하여 관리하는 것은 낡은 방법이며,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독성의 분류를 체계화하고, 독성에 따른 관리수준을 표준화하는 것이 답이다.

다섯째, 안전에 대한 결정권은 소비자에게 있어야 한다.

미국 '비상대응계획 및 지역사회알권리법(EPCRA)'은 사고의 예방과 대응은 중앙이 아닌 지역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이 때문에 각 주별로 지역을 다시 분할하여 '지역비상계획수립위원회(Local Emergency Planning Committee)'를 설립하게 했다. 기업들은 이 위원회에 물질안전보건자료와 사업장의 화학물질 취급정보 및 사고시의 비상대응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위원회는 이 자료들을 토대로 지역사회의 전체적인 사고예방과 대응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화관법에 미국의 체계를 거의 수용하면서, 이 위원회 설치는 배제했다. 화학물질에 관한 주민의 참여와 협의는 시기상조라는 환경부의 입장 때문이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법 개정운동이 진행되었고, 다행히 최근 주민참여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조례를 통해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되었다. 화학사고의 지역대응을 위해서는 지역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화학사고의 우려와 고독성물질에 대한 지역사회 노출이 우려되는 지역부터 적극적으로 조례를 제정하는 일이 추진돼야 한다.

여섯째, 화학물질에 대한 완전한 알권리를 실현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화학물질 취급량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기업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법률은 화학물질의 구체적 저장위치는 비공개를 하더라도 취급량은 모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도 주민들이 모두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화관법에는 화학물질통계조사와 배출량조사 결과를 모두 공개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미국에서는 지역사회알권리에 관한 법률을 1986년에 도입할 때, 기업의 비밀을 사전 심사하여 승인하도록 하였다. 이때, 핵심조항은 불성실한 비밀 신청에 대한 처벌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화관법에 비밀 심사 제도가 도입돼 과거보다 비밀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불성실한 비밀신청에 대한 처벌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거짓 비밀에 대해 더 엄격한 태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산안법의 기업비밀 조항이다. 환경부가 화관법으로 화학물질통계조사와 배출량조사 결과를 공개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산안법이다. 사업주들이 자신이 취급하는 화학물질 정보를 환경부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물질안전보건자료에 영업비밀이 남발되고 있어 화학물질 취급 사업주들도 정확한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는 이렇게 숨겨진 화학물질 정보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곤란함에 처해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가장 심각하게 제약하는 산안법은 즉시 개정되어야 하며, 화관법과 같이 물질안전보건자료 기업비밀 또한 사전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화학물질의 포장용기에 붙이는 라벨에 물질의 성분명과 고유번호(카스번호)가 반드시 공개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장품은 전성분이 공개된다. 포장용기에 제품의 중요 성분들이 반드시 기재되어 쉽게 파악 가능하도록 산안법을 개정해야 한다.

한편,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한국환경회의,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환경노동위 홍영표 위원장과 함께 '화학물질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오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 소회의실에서 가질 계획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김신범 실장의 주제 발제가 있으며, 박동욱 교수(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와 관련 정부 기관 담당자들의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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