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을 대표하는 궁궐, 서궐

오래 전으로 기억된다. 취미가 답사라서 시간이 허락되면 궁궐을 자주 간다. 특히 문화해설사와 같이 다니는 궁궐 투어는 항상 즐겁다. 들어도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이다. 어느 날 창덕궁 문화해설사가 답사 무리에 질문을 했다.

▲ 경희궁 전경

“조선의 5대 궁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순간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나 역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또 뭐가 있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경희궁’이었다. 당시 경희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태 였다. 건물 하나 없었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경희궁 터’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경희궁은 만화에서 보듯 서궐로 불렀다. 경복궁은 법궁으로 불렀고 창덕궁, 창경궁은 동궐로 경희궁은 서궐로 불렸다. 경희궁은 경복궁이 사라진 시대 즉 임진왜란 이후로 동궐과 양궐 체제로 조선의 쌍두마차 궁궐이었다. 인조시대부터 대한제국 시대까지 조선의 수많은 역사 현장의 배경이 되었던 경희궁. 이름이 여성스러운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진다.

사라진 이름 경희궁

120여 동의 건물이 꽉 차있고 빈틈없이나무와 담이 둘러쳐 있으며 사방이 숲으로 감싸인 경희궁. 그 모습은 ‘서궐도안’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서궐도안은 경희궁이 화려한 때를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그런 경희궁은 없다. 아니, 언제 완성할지 모르지만 복원 중이다.

▲ 과거 화려했던 경희궁을 그린 서궐도안 부분(사진=문화재청)
 

경희궁은 일제가 조선을 먹으면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일제는 경희궁의 전각 대부분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인 학교인 총독부중학교를 세운다. 정전인 숭정전은 중학교 교실로 사용되다 후에 일본 불교 종파에 팔린다. 정문인 흥화문은 이토 히로부미의 신사인 박문사 정문(남산)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안에 관공서를 짓는 등 과거의 궁궐 모습은 전혀 남기지 않았고 모든 건물은 다 사라졌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까지 모습은 과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여타 궁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경희궁 터를 일반에 매각 처분하였다. 이게 문제다, 불행의 시작이다. 그래도 다른 궁궐은 건물은 허물어도 터는 남겼지만 경희궁은 60% 이상을 매각하였다.

아무것도 없이, 땅도 없이, 경희궁은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에도 별다르지 않다. 남아 있는 터에도 서울시 교육청, 서울시립박물관, 구세군빌딩이 세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카운터펀치는 서울역사박물관이다.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해 서울시 홍보를 위한 새 박물관이 필요했는데 서울역사박물관을 경희궁 한복판 자리에 건설했다. 경희궁 중심 중의 중심지에 말이다. 정말 대단한 나라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 스스로 하라는 게 일제의 방식이다. 일제는 경복궁을 팔아 조선총독부를 지었고, 궁궐과 유물, 땅을 팔아 식민지 지배를 했다. 또한 개발시대에 정부 역시 중요한 땅을 팔아 그걸로 먹고 살았다. 얼마나 많은 기업에 서울 한복판 요지를 팔았는가. 사람은 달라졌지만 또다시 땅을 판 돈으로 우린 먹고 살았다. 이젠 경희에게 돌려줄 때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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