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이름 걸고 추진하는 과학재단인 만큼 유니크한 운영 필요...미국의 싱귤래리티 대학이 모델 돼야

[뷰티경제=권태흥 기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실천한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나를 생각하라’는 뜻대로, 선대 서성환 회장의 유지를 잇는 것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서성환 회장의 호가 장원(粧源)이다.

▲ 아모레퍼시픽 그룹 서경배 회장은 사재 3천억원을 들여 '서경배 과학재단' 출범을 발표했다.

특이성과 독창성 위한 몰입환경 조성

서성환 평전인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에는 그가 유럽 출장 중에 화장품 기업의 원천이 기계화된 시설과 기술력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그는 가내수공업이던 화장품 사업을 1945년 이어받고 불과 9년만인 1954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기업 연구소를 설립했다. 화장품 업계 최초의 기업 연구소를 세우고 호도 장원으로 삼았다는 것은 후대에게 큰 일깨움을 준다. 그 DNA를 이어받은 서경배 회장이 한국 화장품사에 기념비적인 재단을 출범시킨 것이다.

서경배 회장은 “오랜 시간 품어온 꿈과 소명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과학재단 설립을 결심했다”며,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창의적인 신진과학자를 발굴해 장기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서 회장은 “천외유천(天外有天)이란 눈으로 보이는 하늘 밖에도 무궁무진한 하늘이 있다”라고 설명하며, “우리의 신진 과학자들이 무한한 꿈을 꾸며, 특이성(singularity)과 독창성이 발현된 연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몰입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아쉬운 운영 방안?

서경배 과학재단이 밝힌 미션은 ‘생명과학 분야의 기초 연구에서 새로운 연구활동을 개척하려는 국내외 한국인 신진연구자에 대한 장기적 지원’이다. 매년 3~5명을 선발,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선발 과정은 1차 서류 심사, 2차 연구계획서 서류 심사 및 토론 등으로 연구 과제의 독창성, 파급력, 연구역량 등을 중점적으로 심사할 예정이다.

1차년도인 2016년 11월에 그 내용이 공고되며, 2017년 1월부터 2월까지 과제 접수 후 1차 심사(3~4월)와 2차 심사(5월)를 거쳐 6월에 최종 선정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여기까지 보면 정부나 대학이 하는 심사 절차와 똑같다. 특이성과 독창성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꽉 막힌’ 전형적인 절차다. 이런 판에 박힌 심사로 호기심과 인류 발전의 꿈을 가진 신진 과학자들의 번쩍이는 두뇌를 자극할 수 있을까? 또 최근의 연구 트렌드가 융복합의 팀웍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연구 그룹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하면 어떨까?

‘서경배 과학재단’이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서경배 회장의 발언에 감동하면서, 기자가 주목한 단어는 ‘singularity’이다. 첫 발표 때도, 이번 출범을 알릴 때도 ‘singularity’는 언급됐다. 그만큼 그 뜻을 살리길 희망했다.

하지만 지금의 신진과학자 심사 방식은 아쉽다. 전혀 특이하지 않다.

국민들의 관심 끌 수 있는 싱귤래리티?

‘싱귤래리티’란 말을 처음 사용한 레이 커즈와일과 엑스프라이즈 재단을 만든 피터 다이어맨디스가 설립한 게 싱귤래리티 대학이다. 구글, 애플 등의 기업인들이 하버드보다도 다니고 싶은 대학이다. 두 사람은 혁신의 주요 요인으로 두려움, 호기심, 탐욕, 의미를 꼽고, 그 네 가지 동기 요인 모두를 이용하는 한 가지 방법이 인센티브 상금이라고 했다. 인간의 경쟁 본능을 자극하고, 인류의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유인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게 할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이라고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레이먼드 오티그가 1919년 제시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비행사에게 2만 5천달러의 상금을 지급’하는 제안이다. 시한은 5년. 파리와 뉴욕의 5,800킬로미터 무착륙 비행기록은 당시엔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5년이 지나자 오티그는 다시 기한을 연장했고, 마침내 1927년 5월 20일 린드버그가 33시간 30분 동안 단독 무착륙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변화의 시대는 도래했다. 18개월만에 미국의 유료 승객 수는 30배 증가했고, 조종사는 3배, 비행기는 4배 증가했다. 린드버그의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은 혁신을 위한 최상의 인센티브 모범 사례가 됐다. 다이어맨디스는 '소그룹간 연구자들의 호기심과 위대한 생각의 진화가 싱귤래리티를 만든다'고 했다.

모험심을 자극하며, 혁신을 촉진하는 아이디어가 나오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서경배 과학재단에 필요하다. 아울러 국민들도 참여하는 인센티브 상금 제도 같은 발상의 전환이 아쉽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서경배과학재단 출범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다는 점이다. '임팩트도 없고, 그저 재단이 만들어져서 연구과제를 선정한다더라'로 끝나기에는 서경배 회장의 웅지가 아쉽다.

모 스포츠단체 회장이 유엔에서 ‘난민지원’ 의사를 밝히고 부랴부랴 급조형 계획을 짜는 것과 비교되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훌륭한 뜻이 국민들의 관심과 덕담 속에 이뤄진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에피소드를 많이 생산해낼 것인가!

그저 재단과 연구자가 뚝딱 해치우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국민들이 ‘서경배과학재단’에 호기심을 가질 여지는 없어 보인다. 연구비 지급이나, 시상식 같은 판에 박힌 행사용 재단설립을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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