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들이 서로 사고 팔기 행태...화장품 업계 성장 이면에는 물 밑에서 밤낮 없는 갈퀴질을 한 연구원이 큰 역할

[뷰티경제=권태흥 기자] 화장품 연구원들이 금값이다. 중국 업체들에 스카웃 된 연구원들은 억대 연봉이 기본이다. 문제는 인력 유출도 심각하지만, 이들이 비슷한 제형의 화장품 개발에 나서, 미투(me too) 제품 양산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또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할 미래형 화장품 개발에서 뒤처질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화장품 원료공급사의 A 담당자는 만나는 업체마다 연구원을 소개시켜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ODM업체 B 관계자는 “연구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여느 화장품사들도 사정은 다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사정이 이렇다보니,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서로 소개하여, 상위 업체나 경쟁업체로 ‘팔려나가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것. 이직도 잦고, 근무연한도 짧아지며, 몸값 오를 때 고임금으로 이직한다는 것이다.

중국 업체, 억대 연봉으로 연구원들 유혹

지난 6월 중국 5위 화장품 기업인 프로야그룹이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브랜드숍 시장 진출을 선언했을 때 업계는 깜짝 놀랐다. 아모레퍼시픽의 최고 기술자와 LG생활건강의 마케팅 전문가가 한 팀이 되어, 중국 업체에 스카웃된 것이다. 국내 1, 2위 업체의 고급 인력 유출 붐은 연이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연구원의 임금을 연봉 3~5억원으로 유혹한다는 것. 실제 국내 유수 업체의 연구원들의 이직 소식이 많아지고, 정년퇴직자들도 재활용 차원에서 고임금으로 스카웃되고 있다는 것이다.

A 담당자는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화장품업계가 눈부신 성장을 기록할 때, 수면 밑에는 연구원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쉼 없는 갈퀴질이 있었다”며, “연구원들의 처우 개선과 연구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연구원들의 중국 진출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들의 품귀 현상으로 일부 기업들은 일본의 고령 퇴직자들을 초청하여, 2박 3일 또는 3박 4일 일정의 단기 연수도 실시하고 있다. 보수는 항공료, 체재비 외에 500~1,000만원 안팎이라는 게 업계 정설이다.

또 연구 환경도 연구원들의 이직 요소다. 특허나 소재기술 보다는 제형 연구에만 투입해서 단기간의 실적을 강요하는 바람에, 원천기술 개발에 소홀한 것도 이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 스포이드로 수만 건의 실험을 해야 하는 연구원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보다는 빨리 제품화시켜 시장에 내놓으려는 방침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이직한 연구원들이 제형을 그대로 모사하는 제품 개발로 이어져, 시장에 미투(me too) 제품이 나오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A 담당자는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화장품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창의적인 제품 출시였다. 대표적인 게 BB크림과 에어쿠션”이라며, “토니모리가 세포라에 입점한 것은 뷰티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K뷰티의 경쟁력을 확인한 것인데, 이는 화장품 업체의 R&D가 바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헬스 7대 강국 회의’에서도 화장품 관련 인사는 하나도 없어

현재 화장품의 R&D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비중을 크게 늘리려는 게 업계 사정이다. 과거 마케팅에 의존했던 업계가 이젠 기술력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시장 과열, 글로벌화 등으로 차별화된 제품 수요가 높아진 것도 그 이유다. 특히 코스메슈티컬 제품과 더모코스메틱 등이 각광받으면서, 신기술 개발, 특허 획득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9월에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열린 ‘바이오헬스 7대 강국 진입을 위한 보건산업 종합발전전략 회의’에서도 K뷰티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2.68%(2013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화장품 제조판매업체가 2012년 829개소에서 2015년 6,422개소로 증가하는 등 영세업체 급증도 연구개발 인력 부족 현상을 초래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2015년 55억 달러 규모이며, 수출은 연평균 37.5%(‘11, 8억→’15 26억 달러)로 고속 성장하고 있으며, 화장품 무역수지는 지난해 1.7조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또 화장품 생산액은 2015년 11조원, 2018년 18조원, 2020년 23조원으로 전망하고, 보건복지부 주도로 화장품 연구인력 양성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부끄럽게도 K뷰티 양성을 위해 글로벌 톱10에 2개사, 수출 고속성장 지원을 약속하는 관계부처 회의의 ‘바이오헬스 산업육성 민관 협의체 명단’에는 화장품 관련 업계 인사나 학계, 연구기관은 들어있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의 의약에 편중된 정책으로, 바이오헬스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연구소 보유 417개사, 제형기술에 치중

한편 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을 모두 합한 화장품 산업의 R&D투자 규모는 1,999억원이었다. 기업당 연구개발비는 10억원이었다. 기업 부담은 93.2%, 정부재원은 6.6%에 불과했다. 연구개발비의 투자 분야는 효능 및 안정성 향상을 위한 제형기술에 40.5%, 평가기술 24.6%, 소재기술 22.1%, 디자인 포장용기 개발 기술에 12.8%였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5)

보건산업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화장품 제조판매업체 3,127개 중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업체는 913개(29.2%)이며, 연구소를 보유한 업체는 417개로 나타났다. 화장품 제조판매업체의 가치사슬별 인력 현황을 보면, 영업마케팅 인력 비중이 52.3%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은 생산 (23.4%), 사업지원(17.5%), R&D인력은 6.8%였다.

2013년 연구원 수는 2,068명으로, 실제 연구참여 비율을 고려한 상근 연구원 수는 1,804명이었다. 학위별로는 석사학위 연구원(51.9%), 학사학위 연구원(37.1%), 박사학위 연구원(7.6%)였다. 전공별로는 이학(48.7%) 및 공학(34.7%) , 의·약·보건학(8.5%), 인문학(5.3%) 순으로 나타났다.

K뷰티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창의적이며 지속적인 성장 바탕 하에서 K뷰티를 육성하려면 R&D가 필수 과제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작금의 연구원 품귀 사태는 조속히 해결해야 할 난제다. 이웃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연구 환경을 본보기 삼아, K뷰티의 전반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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