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 섞어 만든 박가분 … 국내 분 업계 공멸 불러

#1 조선시대 말 한 주막에서 여염집 여인들과 기생들을 상대로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던 매분구 천여인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터진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쓰던 수사관들은 천여인이 분을 만들 때 납을 섞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든 외동딸을 치료할 돈을 벌기 위해 부착력이 우수해 미백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납을 화장품 원료로 쓴 것이다. 결국 범인이 밝혀지는데, 범인은 천여인의 충실한 고객 가운데 한명인 설향이란 기생이었다. 천여인이 만든 분을 애용했던 설향은 납중독으로 환각에 빠져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도 모르면서 천여인을 살해한 것이다.

 

#2 1937년, 두산그룹의 전신인 박승직상점은 상품화된 국내 최초 화장품으로 기록된 박가분 생산을 중단한다. 1920년대 ‘박가분을 항상 바르시면 살빛이 고와집니다’라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할 만큼 박가분은 1920~1930년대 초까지 최고의 히트상품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박가분에 들어 있는 납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특히 매일 얼굴에 박가분을 바르는 기생들에게 피부가 푸르게 변하면서 눈에 경련이 일어나고, 자주 구토를 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자 기생들의 고소가 줄을 이었고, 박승직상점은 박가분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케이블TV용 드라마 ‘별순검 시즌1’ 12화 ‘매분구 살인사건’의 줄거리다. 2년 전인 2006년 11월17일 방영된 ‘매분구 살인사건’은 케이블 채널 사상 최고인 전국 시청률 4.33%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에서 살해된 매분구 천여인은 딸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사기 위해 다른 매분구보다 더 많은 분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여인들 얼굴에 바르는 분에 납을 섞어야 했다. 개인적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천여인의 행동은 자신이 만든 분을 바른 뒤, 고운 피부와 정신을 망치고 살인자가 된 설향을 비롯해 많은 여성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었다. 결국은 천여인 자신도 죽음을 맞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국내 화장품 가운데 제조허가 1호를 받은 박가분에 대한 실화다. 납 성분을 넣어 피부 부착력을 높인 박가분은 미백 효과가 뛰어나 값비싼 서양분이나 일본분을 살 수 없었던 서민이나 기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한때는 하루 5만 갑이나 팔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금속인 납을 함유한 게 문제가 됐다. 특히 살빛이 더 고와보이도록 매일 박가분을 바른 기생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안겼다. 또 성난 기생들이 박가분을 만든 박승직상점을 고소하는 등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빚었다. 실의에 빠진 한 기생은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실제로 1927년 3월 2일자 조선일보에는 한 창기가 박가분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납이 함유된 분에 관한 이야기 두 가지를 소개했다. 모두 오래 전 일이고 더구나 첫 번째 이야기는 드라마 작가가 꾸며낸 허구일 뿐이니, 오늘날 국내 화장품 업계완 무관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처럼, 비슷한 사건이 당장에라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박가분 사례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박가분은 납이 들어 있지 않은 국내 백분 업체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다.

 

박가분을 만들던 박승직상점이 1937년 문을 닫은 뒤, 서가분, 장가분 등 박가분의 경쟁 상대였던 다른 국내 분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당시 화장품 소비자들이 납중독 사건을 일으킨 박가분과 함께 다른 국내 분들을 외면하고 서양분이나 일본분만 찾았기 때문이다.

 

올 9월 말부터 한동안 전세계에 먹거리에 대한 공포를 안겨줬던 멜라민 파동 때 일이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멜라민이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고 들었는데, 화장품을 써도 안전한가?”라는 물음과 함께 화장품도 정말 검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에 따라 국내 화장품 업체들도 멜라민 파동의 불똥이 화장품 업계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였다. 다행하게도 화장품 업계는 멜라민 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라도 유사한 사건이 터질 수 있음을 잊지 말고 항상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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