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검사 비용부담 덜었지만 수차례 조사로 피해자 불편 커

생후 14개월부터 폐질환을 앓아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임성준 군과 어머니 권미애 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구제 공청회가 예정된 가운데 지난 1일부터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폐손상 의심사례 394건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뒤늦은 대책 마련으로 피해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보인다. 

피해조사는 폐손상 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과 국립중앙의료원이 질병관리본부 조사용역 자격으로 실시한다. 폐손상과 가습기살균제의 실제 연관성을 의무기록, 임상검사, 사용 이력 확인으로 검토한 후 전문 의료진이 개인별 판정하는 과정이다. 폐기능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이 포함됐다. 

생존자는 조사 동의서, 설문지, 과거 의무기록을 제출하고 흉부 방사선, 고해상도 폐 CT, 폐기능 검사, 혈액 검사를 받는다. 이후 조사단이 피해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주변과 집 안의 환경, 구조, 유해 요인, 가습기살균제 사용 증거를 살피고 가족 대상 설문을 실시한다. 사망자도 직접 검진 이외의 모든 방식을 동일하게 진행한다. 

지난 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임성준 군이 설문조사와 검사를 진행했다. 올해 열한 살인 임 군은 생후 14개월 만에 폐렴, 폐섬유화, 급성호흡부전증 발병으로 10년간 투병한 피해자다. 지난 5월 KBS 프로그램 ‘강연 100℃’에 어머니 권미애 씨가 출연해 사연을 알렸다.

임 군의 병명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다. 산소호흡기 없이는 10분도 스스로 숨쉬기 힘들어한다. 오랜 요양으로 햇볕을 쬐지 못해 만성 골다공증이 있어 어머니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호흡기를 끼우기 위해 기도를 절개해 늘 손수건으로 목을 가리고 다닌다. 이 때문에 임 군의 목덜미는 피부질환과 가려움증이 생겨 긁힌 생채기와 피딱지투성이로 희게 일어나 있었다.

피해자 임성준 군이 의료진과 보호자의 도움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이혜복)
 
권 씨는 임 군을 출산한 직후부터 1년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가습기를 틀어줬다. 이후 호흡곤란 증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임 군은 10년간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았다. 집에만 있다가 올해는 월요일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난다.
 
권 씨는 “성준이가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해 떼쓰다가도 학교 안 보낸다 하면 뚝 그치고 가면 밥도 두 그릇씩 먹는다”고 말했다.
 
임 군의 검사는 소아과 검진, 폐기능 검사, CT촬영, 혈액검사 순으로 진행됐다. 소아과 의사의 검진시 권 씨는 임 군을 대신해 진단에 응해 답변했다. 임 군은 기도에 끼워진 튜브 탓에 숨소리가 크게 들리고 기침을 자주 했다.
소아과 진단에 임성준 군과 권미애 씨가 응하고 있다.(사진:이혜복)
임 군의 상태는 심각했다. 집에서도 호흡기 없이 움직이기 힘들어하며 조금 춥다 싶으면 바로 38~39℃로 열이 높아진다고 권 씨가 말했다. 비용부담 때문에 동네 소아과에서 항생제와 해열제를 진단 받아 먹는 것이 임시방편이다. 심장 박동 시 가끔 가슴 통증을 호소한다는 임 군은 심장약도 복용 중이다. 의사는 폐질환을 오래 앓으면 폐동맥고혈압이 발병할 수 있다고 소견을 밝혔다.
 
지난해 환경보건시민센터의 도움으로 받은 검사에선 호흡이 약하고 가래와 기도삽관 탓에 폐기능 검사에 실패했다고 권씨가 말했다. 5~6세도 할 수 있는 간단한 검사지만 내쉬는 숨이 약한 임 군에겐 무리다. 의사와 임 군은 검사 전 호흡 연습을 했지만 올해도 결국 내쉬는 호흡이 약해 폐기능 검사에 실패했다.
 
엑스레이, CT촬영, 혈액검사가 이어졌다. 10년의 투병기간으로 검사가 익숙해질만도 했으나 임 군은 채혈바늘이 혈관에 꽂히자 고통을 호소하며 크게 울음을 터트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방사선 촬영을 위해 윗옷을 벗자 임 군은 추위를 호소해 의료진은 담요를 덮어줬다. 실내 기온은 쾌적한 냉방 수준이었으나 오랜 투병기간을 거친 임 군은 이마저도 괴로워했다.
 
임성준 군은 검사 내내 불편을 호소했다. (사진:이혜복 기자)
엑스레이 촬영시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이 “익숙해 보인다”고 농담했다. “저번 달에 엑스레이를 찍었다”는 권 씨에게 최 소장이 “CT를 찍지 그랬냐”고 물었다. 권 씨는 “비용 때문에…”라며 말을 흐렸다. 임 군의 치료를 위해 권 씨는 빚을 져 가며 1억원의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정부의 늦은 지원 때문에 그간 제대로 된 검사를 못 한 셈이다.
 
임상검사가 끝났지만 결과는 바로 알 수 없다. 조사위원회는 처음 진단받은 병원의 의무기록, CT촬영결과가 들어 있는 CD 등 기록 제출과 주거환경을 알아보기 위한 방문조사가 남았다고 귄 씨에게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외의 유해 원인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방 구조, 위치, 가습기를 설치한 장소를 알기 위함이다.
 
권 씨는 “10년 전 발병했고 아이의 건강 때문에 먼지만 있어도 수차례 이사를 감행해 지금 사는 집이 발병 장소가 아니다”고 난색을 표했다. 기록 제출도 쉽지 않다. 권 씨는 “초반 증상이 시작되고 진단받은 의무기록이 필요해 발급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에서 바로 주지 않는다”고 힘든 점을 토로했다.
 
의무기록은 발급시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검사를 또 받고 병원에 또 다니며 진료기록을 다시 받아야 하니 번거롭다”고 지친 기색을 보였다.
 
검사 내내 동행하며 지켜본 국립의료원 관계자는 데일리코스메틱과의 인터뷰에서 “비용 문제로 제대로 된 설비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고가의 진료비를 부담해가며 피해자들이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증상이 심각한 환자가 많고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라 지켜보며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했다.  
 
의료원 관계자는 이어 “늦었지만 정부 조사로 피해자들이 부담을 덜고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조사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건수는 394건, 이중 사망사례는 116건이다. 피해조사는 다음달까지 실시한다.
 
2011년 정부는 가습기살균제의 폐손상 유발을 인정하고 해당 제품을 전량 회수, 판매 금지 처분했다. 반면 피해자 구제 방안 마련은 늦어져 오는 12일에야 구제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실시될 예정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지난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 제정안을 9월 정기국회까지 미룰 수 없고, 시급히 처리하기 위해 7월 임시국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재 구제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답보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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