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양산 기업 침묵, 환경부 약속 번복…피해자 “정부 뭐 했나”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구제 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장에 옥시 측은 나타나지 않았다.

피해자가 아픈 몸을 끌고 올라와 지켜본 공청회에 기업은 없었다.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 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애초 피해자, 시민단체, 의학전문가와 법률전문가, 정부 부체 관계자와 기업 측이 나올 예정이었다. 방청석에는 휠체어를 타고 산소호흡기를 낀 어린이 환자 등 피해자들이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기업 대표로는 ‘옥시싹싹’의 제조사 옥시래킷벤키저 관계자 참석이 예고됐다. 지난 4월 9일까지 332건의 피해신고접수를 분석한 결과 ‘옥시싹싹’의 피해신고가 236건으로 1위였다. 사망은 78건으로 전체사망피해의 60%를 차지한다. 

하지만 옥시 측은 공청회에 오지 않았다. 관계자에 따르면 “공청회 전날 못 오겠다고 참석을 돌연 취소했다”고 한다. 기업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원했던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이 같은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피해자모임 대표로 참석한 강찬호 씨는 “이 자리엔 나 말고 기업이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며 “기업을 이 자리에 왜 못 오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공청회 진술인으로 참석한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진술에 앞서 “제조회사가 정부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고 국회가 문제 해결을 위해 마련한 이번 공청회 참석도 거부했다”며 “국가가 마련한 조사와 문제 해결의 장을 전면 거부한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공청회는 참석 저조로 예정시간 2시를 훌쩍 넘겨 개회했다.

이날 공청회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여당 측 환경노동위원은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 후 국회 운영에 전면 불참을 선언했다. 소신참석한 김상민 의원 외 아무도 공청회장에 오지 않았다. 파행을 막기 위해 한명숙 의원이 위원들을 불러모아 예정된 2시가 훌쩍 지나서야 개회됐다. 

진술인 법제연구원 박종원 실장, 서강대 이은기 교수는 “소송은 오래 걸려 피해자와 유족의 정신적 고통을 배가시킬 수 있어 특별구제법 제정은 시의적절하다”고 발언했다.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백도명 교수는 “가습기살균제와 폐손상 피해 사이에는 단순한 연관성이 아니라 원인적 연관성이 있다”며 지적했다. 최예용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세계 최초 생활용품에 의한 대규모 치사사건”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지난달 피해자들과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겠다”던 약속한 것을 잊고 돌연 입장을 바꿔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 대신 현 제도를 통해 구제 가능한 방안을 안내해 지원하겠다”고 번복했다.  

기획재정부는 “국가 재정부담이 우려되고 유사 사례를 양산할 수 있다”고 이유를 내세웠다. “국가의 궁극적 책임은 있어도 피해는 기업과 피해자 개인 간의 일이고 민사소송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특별법 제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완강히 버텨 피해자의 공분을 샀다.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관계자 사이 앉아 있던 피해자모임 강 대표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분노를 참고 있어야 하느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2살난 딸을 잃은 백승목 씨는 “떼돈벌자고 나온 것도 아니고 딸 팔아 팔자 고치려고 나온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한다”며 울먹였다. 

 

피해자 가족 장동만 씨는 병상의 아내 모습을 보이며 울분을 터트렸다.

피해자 가족 장동만 씨는 “내 딸은 어린 나이에 피를 토하며 죽었고 병상의 아내는 고통스러워하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한다”고 증언했다. “감기라도 옮으면 치명적이라 나는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5살 난 다른 자식은 어린이집도 못 다녀 또래들과 대화를 못해 아직도 말을 잘 못 한다”고 아픔을 토로했다. 

공청회 내내 방청석의 피해자 가족은 모두 울고 있었다. 피해자 이재남 씨는 “이런 얘기 들으려고 온 게 아니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피해자모임 강 대표는 회의장을 나서며 “정부에서 저렇게 편을 다 들어주니 기업이 안 나올 만도 하다”며 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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