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한 법 집행자가 보여준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

손영남 기자
손영남 기자

“여보세요. 어디시라고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지방에서 천연성분을 소재로 화장품을 제조·판매하는 영세 화장품 기업의 대표 L씨는 그렇게 기자의 물음에 대응해왔다.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달부터 L씨는 그간 자신이 공들여 가꾸어왔던 회사의 문을 일시적으로 닫아야만 했던 탓이다. 이유는 하나, 화장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식약처의 행정처분을 통보받은 때문이다.

L씨에게 건네진 통보서에는 제조업무정지 1개월, 광고업무정지 3개월, 판매업무정지 6개월이란 표시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각각의 제품에 부과된 그 처분은 사실상 폐업통보에 준하는 것이었던 만큼 L씨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은 가혹하다 싶을만큼의 행정처분이었지만 위법 사실이 너무도 명확했으니 달리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의 위법이 전혀 의도된 바가 아니라는 것. 그저 좋은 재료로 화장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한 자신의 노력이 현행 화장품법을 위반한 것이 되리라곤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그였다. 

그는 몰랐다. 기능성화장품으로 심사받지 않고 판매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또 그는 몰랐다. 머리카락이 슝슝 빠지는 분에게 효율적일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을 서술한 것이 6개월간의 판매금지로 이어지리라는 것도.

사정은 딱하지만 어쨌든 법을 위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세 기업에게 6개월의 판매업무정지는 곧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다. 안 그래도 코로나 19로 곤란에 빠져있던 상황에서 부딪친 이 현실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를 일으켜 세워준 건 뜻밖에도 행정처분을 통고한 식약처의 주무관이었다. L씨의 딱한 사정을 꼼꼼히 들은 그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L씨의 일시적 일자리, 그러니까 알바 자리를 찾아주었다는 것이었다.

“저 지금 알바 면접 가야 해요. 주무관님이 마련해주신 자리라 늦으면 안 돼서요.”

업무정지를 통고한 주체인 식약처 공무원이 베푼 이 뜻밖의 선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의아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식약처 공무원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기관의 권리이자 의무, 따라서 제대로 된 공무원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조치는 놀라움 그 이상이었다.

법을 위반한 이의 딱한 사정에 공감하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공무원이라니... 

흔히 국가기관이라고 하면 그저 법을 휘두르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 칼에 다치는 사람들의 고통에는 무감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사람들이 가지는 고정관념대로라면 그렇다. 그러나 그 주무관은 제대로 된 국가기관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부신 셈이다. 이런 국가라면 약간의 불이익을 부과한다 해도 믿고 따를 수 있는 것 아닐까. 적어도 이번 케이스는 그를 명확히 보여준다.

■ 법에 따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반드시 필요해

현행법령의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하는 일은 솔직히 쉽지 않다. 특히 영세 기업들은 위의 사례처럼 자신도 모르게 위법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타깝지만 그로 인한 불이익은 법을 미처 준수하지 못한 이들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사례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법무팀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들과는 달리 영세 소기업들은 유사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겠다면 최소한 관련 법령 정도는 읽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위 사례에 등장한 L씨처럼 법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그리고 의도치 않은 법 위반 시의 대처 역시 미흡하기 그지 없다는 것도 혀를 차게 만드는 요소다.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법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대처가능한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L씨는 법이 정한 이의신청기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어떻게 할 수 없는지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최소한 그 기간 안에 이의 신청을 하고 자신의 상황이나 오류를 설명했다면 처분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았을까.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겪어야 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적어도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지식은 가지는 것,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선 L씨가 전하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뷰티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